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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부츠 그 이상의 것-석남진님
첨부파일   등록일 2007-03-06 조회수 16116
회사 출장중 우연히 보게된 신문 한 장. 그것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키부츠 프로그램이었다. 이스라엘, 듣도 보도 못한 나라. 난 그곳으로 떠나리라는 마음을 굳혔다. 그곳에서 잠 자고 있던 내 잠재의식을 깨우고자 나는 결정하였다.

  1996년 12월 31일 나는 8년 6개월간 정들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지의 신세계로 나의 정신과 마음을 떠나보냈다. 주위 친구들과 직장상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대의 일원으로 1997년 1월 1일 비행기에 내몸을 실었다.

  이스라엘 키부츠 그곳이 정말 나에게 꿈과 이상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설레임과 부푼 기대에 몸의 떨림을 느꼈고, 장장 17시간 (비행기 사정상 제주도로 회항하였음)동안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우리 탐험대는 새벽 1시 벤구리온 공항에 내렸다. 많은 키부츠 리더들의 환영과 영어연수 팀 키부츠 리더 및 그와 동행나온 Volunteer들과 인사를 나눈 뒤 우리 영어 연수팀 24명은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가 남쪽이고 어디가 북쪽인지도 모르는 어둠속을 4시간이나 달려갔다. 그곳이 바로 우리 연수팀이 2주간 생활하게되는 '에인 하쉬로샤'였던 것이었다.

  그곳 하쉬로샤 키부츠는 전형적인 농촌이었고 그곳의 주 소득원은 화일 만드는 공장과 과수원(오렌지, 귤, 자몽 등)과 칠면조 농장 그리고 젖소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렴풋이 키부츠란 곳의 생활을 알 게 되었다. 2주간의 연수 그것은 키부츠 생활에서의 시작이고 기초였다.

  우리 연수팀은 2주간의 교육을 끝내고 반씩 나뉘어 한 팀은 '크파르 하호레쉬'로 한팀은(내가속한) '크파르 블룸'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크파르불룸'은 '에인 하쉬로샤'에서 버스타고 6시간은 가야되는 곳이었으며 그곳을 레바논과의 접경지역으로 많은 우려와 호기심 (그곳은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을 갖고 가게 되었다.

  '크라프불룸'은 '하쉬로샤'보다 방대하고 무엇보다 호텔을 경영하고 있어 우리도 그곳에서 일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내감이 있었다. 하지만 발런티어 리더는 우리들에게 그런 일보다는 주방, 과수원, 세탁소, 다이닝룸 등의 일을 주었다.

  난 처음부터 '크파르블룸'을 나올 때까지 (두달) 주방에서 일하였고, 아침 6시부터 오후2시까지 설거지와 음식 재료준비 등의 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가도 식사 준비로 그릇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로 재미있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일이 끝난 후에는 동료들과 이야기도 하고 운동도 하며 때로는 낮잠을 즐겼다.

  그곳 키부츠는 워낙 크다 보니까 키부츠멤버도 많고 학교(초,중,고등학교)도 있었고, 극장도 있어 매주 목요일에는 영화를 상영하였다. 물론 영화의 자막은 히브리어이고 대사는 영어니까 가끔 아는 단어가 나와 내용을 소화하기도 했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처음 3주간은 한국친구와 방을 사용했으나 그후 그곳을 나올 때까지는 네덜란드 친구와 방을 함께 사용하였다. 처음 외국 친구와의 생활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다. 처음엔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이 많았으나 친해지니까 재미있는 일도 많고 서로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발런티어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발런티어 생활을 즐기고자하는 주의가 대부분이었으며, 때로는 이웃 키부츠에 가서 놀기도 하였다. 어딜까나 키부츠에는 발런티어 POP이 있어 금요일 저녁이면 POP에가서 춤도 추고, 맥주도 마시고 그렇게 지냈다.  나는 주로 금요일 낮에는 키부츠닉들이 하는 농구모임에도 나가 게임도 즐겼다. (물론 체육관에서 농구를 했다. 

   한달에 한번 발런티어들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까 여행 안가는 키부츠도 꽤 있더군요. 왜냐하면 가난한 키부츠라 그러더군요.) 우리는 나자렛과 헬몬산을 다녀왔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중에 이스라엘에 눈이 온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스라엘에서 단 한 곳, 헬몬산은 겨울이 되면 눈이 펑펑 온답니다. 스키장도 있고요. 하지만 전 스키장에는 못가보았어요. 그곳은 입장료를 받고 있어 결국 포기했죠.

  그렇게 처음의 키부츠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두 번째로 간 곳은 남부 에일랏에서 버스로 30분 떨어진 '그로핏'이라는 조그만 키부츠였습니다. 크기는 '크파르블룸'의 3/1정도 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제가 다시 가고 싶어지게 만들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남부로, 제가 간 시기가 3월 말경이었는데도 그쪽의 날씨는 북부와는 영 딴판이더군요. 5월정도 되니까 날씨가 40도를 오르내리면서 수영장 개장도 하더군요. 전 홍해에서 수영도 하였답니다. (3월말에)  '그로핏'에는 발런티어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어서 밤에 잘 때나 낮에도 시원하게 있었습니다. 물론 방마다는 아니지만 냉장고도 있었구요. '그로핏' 키부츠는 조그마하지만 비닐 만드는 공장도 갖고 있고, 넓은 농장 (주로 감자)과 데이츠(대추야자나무)를 운영하고 있더구요.

  이스라엘은 물이 부족한 나라이면서도 물을 풍족하게 쓰는 것을 보고 전 놀랐답니다. 어느 키부츠를 가봐도 스프링쿨러 안돌아가는 키부츠가 없고, 남부로 내려갈수록 밭에는 시스템에 의하여 시간마다 정확하게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한 나라에 대단한 국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키부츠들은 많은 잔디밭을 가지고 있더군요. 저의 그곳에서의 첫일은 밭에서 감자캐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캐는 것이 아니고 기계로 캐내면 저와 발런티어들은 차 뒤에 승차하여 썩은 감자를 선별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그 썩은 감자 생각하면 지금도 인상이 찡그려집니다. 그 다음 일은 양파를 상자에 포장하는 일이었고, 그곳에서는 안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키친, 데이츠, 다이닝룸, 일러게이션, 레스토랑키친, 치킨하우스 등등)

  제가 도착하던때가 이스라엘 축제기간이었습니다. '푸림'이라는 축제는 옛날에 에스더왕비가 유대인들을 죽음의 함정에서 구한 것을 기리는 것으로 키부츠에서는 특이한 복장의 가장무도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5월에는 이스라엘 독립기념일이 있어서 주위의 키부츠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다채로운 행사도 갖고 모든 음식과 맥주를 공짜로 주더군요. 어느때인가 발런티어들과 키부츠닉들과의 파티가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밥말리'라는 사람을 추모하는 파티라 하더군요. 그래서 전 이사람이 이스라엘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나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자메이카 사람으로 유명한 팝아티스트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파티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습더라구요. 그리고...추억이죠...

  제가 있던 키부츠는 다른 키부츠와는 달리 먹는 것에서는 모든 것이 풍요로왔습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특히 발런티어들이 참 마음에 들었거든요.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캐나다, 미국, 남아공, 호주친구들을 만났었습니다. 이 친구들과 때로는 에일랏에 놀러가기도 했으며 싸우기(말다툼)도 하였습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겠지만요...  

  정말 다시한번 그때로 돌아가 그시절의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달간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및 유럽을 여행하였고, 특히 키부츠에서 만난 유럽 친구들집을 방문하여 유럽여행을 돈 적게 드는 방법으로 여행도 하였습니다.

  키부츠, 그곳은 저에게 많은 추억과 미련을 남기게 했습니다. 국적과 말은 달라도 사람사는 곳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해주었으며, 제자신을 뒤돌아보게하는 체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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