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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e for New Life! -배성한님
첨부파일   등록일 2007-03-06 조회수 6431
1999년 7월 9일, 28개월의 해군 복무를 마치고 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복학하기전까지의 8개월이란 시간동안 나 자신을 정리하고 내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배낭여행.....하지만 난 좀 장기간의 해외생활을 하고 싶었다.여러 가지를 조사하던 중 알게 된 것이 kibbutz...... 마침 모아두었던 적금 150만원과 제대 후 바로 시작했던 공사장에서의 노동일로 모아 둔 100만원이 날 어서 떠나라고 재촉했다. 99년 9월 8일, 난 주저 없이 이스라엘로 떠났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조금은 두려움, 그리고 왠지 모를 호기심을 가득 안고 드디어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길쭉한 야자수. 의외로 덥진 않지만 소금기 많은 습한 공기가 확실히 내가 이스라엘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도착한 kibbutz는 Kiryat Anavim. 이스라엘의 수도인 Jerusalem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거리이다. 도착하자마자 시차적응을 해야한다며 처음 3일 동안은 쉬라고 하던 Pip 아줌마. 그리고 인도, 일본, 핀란드 각각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에서 온 영국 친구들,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등 여러 나라 친구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것은 여러 키부츠를 돌아보고 싶던 욕심 때문에 영어 울판이 끝나면 바로 다른 키부츠로 옮기려 했던 것인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마음은 사라져 갔다. 친절한 키부츠 멤버들과 계속 오고 가는 발런티어들이 모두들 착하고 재미있었고 예루살렘과 가까워 주일엔 한인교회에 가기도 쉬웠다. 모든 것이 좋았다. 여러 발런티어들과 떼거지로 예루살렘의 디스코텍과 펍(pub)에서 신나게 춤추고 한 잔 하기도 하고 정말 신선한 재미였다. 

난 Kiryat Anavim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공장에서 파이프를 담아 포장하는 일, 정원 가꾸기, 젖소 목장에서 송아지 우유 주기, 식당에서 야채 다듬기, 수퍼마켓 물품정리 등 보통 단순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은 왜 먼 이국 땅에서까지 그럼 힘들고 단순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궁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한다. 사실 그 일 자체만 보면 그냥 일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도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나라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땀흘리며 일하는 것 그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고 그 현실을 즐기는 것이 kibbutz volunteer 생활의 묘미가 아닐까 라고 반문한다. 그러니까 일은 여러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기 위한 조그마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가운데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을 통해 그들의 문화와 서로를 알 수 있고 더구나 다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끌어갈 우리로서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일랜드 친구 크리스의 말이 생각난다. 크리스는 자기의 꿈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세상을 알기 위해 여러 젊은이들을 접할 수 있는 이곳에 왔으며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지금도 세계를 여행 중이다. 바로 그것이다. 뭔가 엉뚱하고 허황되고 힘들더라도 뭔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고 기쁨이고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kibbutz에서의 일에 대한 의미는 충분히 이해됐으리라 생각한다. 

키부츠에선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번은 프랑스에서 온 제니퍼라는 여자애가 "너희는 개를 먹는다며? Disgusting!"하다며 종종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다. 그래서 난 "너희는 달팽이와 개구리도 먹으면서 뭘?" 이라고 서로 Disgusting 하다고 하며 지낸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양파와 파를 썰고 우유, 계란과 밀가루, 소금을 넣고 부침개를 한 적이 있는데 여러 친구들에게 맛보라고 권했고 제니퍼 역시 먹었다. 맛있다면서 어떻게 만드는 거냐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차근차근 가르쳐주자 자기는 스파게티를 잘한다며 서로 친해졌고 결국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서로 공유하게 되었다. 난 이 부침개를 'korean pan cake'라 이름짓고 종종 부침개를 만들어 주곤 했다. 그리고 볶음밥도 자주 하고 한국에서 떠날 때 신라면 10개를 가져왔었는데 'korean hot noodle'이라며 끓여줄 때 콧등에 땀방울 맺으며 연신 물을 먹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집에서 라면 정도만 끓일 줄 알았지 주방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거기서 cook이란 애칭을 얻을 정도로 요리에 취미를 붙였고 잘 먹는 친구들의 모습에 더욱 요리가 재미있었다. 지나가다 나만 보면 부침개 부쳐먹자며 볼에 뽀뽀를 해주곤 하던 제니퍼는 지금도 e-mail로 연락 중이다. 

Day-off 말고도 공장 일을 할 때면 일주일에 이틀을 쉬었다. 그때마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사귄 Ilan이라는 아저씨로부터 MTB를 빌려서 매주 예루살렘에 가서 e-mail을 확인하고 한번은 베들레헴까지 자전거 하이킹을 갔었다. 내가 길을 잘 몰랐던 건지 난 고속도로에서도 자전거를 탔다. 올라갈 땐 힘들었지만 긴 내리막에서의 그 질주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아마 타본 사람만이 알걸?요즘도 가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남산 산책로를 신나게 달리곤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력으로 9월이 새해이다. 'Rosh Hashana'라고 하는 그 날 모든 키부츠 멤버와 우리 발런티어들도 모두 참석해서 또 다른 세계에서의 특별한 새해를 맞았고 'Chanuka'라는 명절에는 다같이 공동식당에서 키부츠에서 마련한 연극과 여러 가지 행사를 관람하며 저녁 만찬을 가졌었다. 

11월 중순엔 MBC에서 'TV로 보는 세계' 촬영팀이 이스라엘의 문화를 취재하던 중 우리 키부츠를 방문했었다. 내가 목장에서 송아지 우유 주는 모습과 몇 가지 인터뷰 장면을 찍었고 작년 12월 28일 TV에 방송되었다. 집에서는 kibbutz에 있는 내 모습이 나왔다고 우리 가족들은 난리였다. 지금도 가끔 녹화해둔 Tape을 보며 그때를 그려보곤 한다. 

12월 초에는 나와 한국인 친구 Jack과 Yoon은 그 동안의 Day off를 모아 약 2주 동안의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다. 룩소로, 기자, 카이로... 물가가 싼 덕에 저렴하게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전에는 크리스마스가 나완 상관없는 영화나 TV속에서만 나오는 명절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나 TV속에서의 그 모습을 내가 직접 경험했다.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였다. Pip 아줌마와 우리들은 근처의 'Finland 키부츠' 디너 파티에 참석했다. 맛있는 음식과 어린 아이들의 '동방박사와 아기예수' 연극 그리고 어떤 성악가의 멋있는 노래. 정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특히 핀란드 키부츠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가 끝나자, Pip 아줌마가 사회자에게 한국인 volunteer들이 많으니 찬송가와 캐롤송을 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회자가 청중에게 물어보았고 모두들 박수로 환영했다. 며칠 전 새로운 5명의 한국인 volunteer들을 포함해 총 9명의 우리들은 합창단이 되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징글벨'을 부를 땐 청중들도 다함께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모든 파티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답해주었고 참여한 우리들 역시 정말 큰 기쁨이었다. 게다가 핀란드에서 온 Sanna가 핀란드 volunteer를 대표해 멋지게 찬송가를 부르자 더욱 멋있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장식했다. 좋았던 기억들을 고스란히 안고 11시쯤 우리는 키부츠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우리들은 각자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서로 교환하며 "Merry Christmas!"를 외쳤다. 

새 천년이다. 영어로는 'Millenium'인가? 난 새 천년을 이스라엘에서 맞이했다. 1999년의 마지막 밤 우리 키부츠에선 파티를 열었다. 모두들 무엇엔가 들떠있고 새해에 대한 염원이 각각의 얼굴에 가득했다. 키부츠 강당에 마련된 디스코장과 Bar 그리고 게임장 등에서 모든 사람들은 즐거웠다. 크리스에게 물어가며 카드놀이를 하고 음악에 취해 춤을 췄다. 우리는 새벽까지 춤추고 마시며 새 천년을 축하했다. "Happy New Year!" 

그 동안의 즐거움과 추억을 뒤로하고 1월 2일 터키로 떠났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결국 돌아왔지만!). 

아무튼 정든 친구들을 뒤로하고 터키에 도착했다. 터키에서도 2주 동안 머물렀는데 터키 역시 물가가 저렴했다. 기차로 이스탄불->앙카라->카이제리->코냐->이즈미르->이스탄불을 돌았는데 학생용 할인 티켓에다가 3등칸을 탔더니 정말 놀라운 가격으로 터키를 돌았다. 

그곳의 경치에 너무 매료되었던 것일까? 이즈미르에서 난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이스탄불발 텔아비브행 비행기를 놓친 것이다. 그것도 이스탄불에서 멀리 떨어진 이즈미르에서. 게다가 텔아비브 도착 후 3시간 뒤 바로 후에 있는 런던행 비행기도 놓친 것이다. 아뿔사! 난 이제 국제 미아가 아닌가? 

'침착하자 침착하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결국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EL-AL' 이스탄불 지점에서 'penalty fee' 75$를 물고 출발 일자를 새로 잡았고 다행히 텔아비브발 런던행 비행기로 1년 open ticket이라 시간을 놓쳐도 문제가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스탄불에서 3일 동안 더 머물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예루살렘에서 만났던 터키 무슬림 아줌마 집에도 방문해서 전통 케밥과 피데(터키식 피자) 그리고 여러 맛난 음식들과 함께 대접받는 행운도 얻었다., 

3일 후 이스라엘로 출발하기 전 공항에서 Pip에게 전활했다. 비행기를 놓쳐서 이스라엘에 더 머물러야 하는데 키부츠에서 머물러도 괜찮겠냐고 하니까 어서 오라며 반가워했다. 너무 고마웠다. 터키에서 산 기념엽서와 카펫 모형을 선물로 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 이후로 정원 일을 하며 1월 24일까지 머물렀다. 

Kiryat Anavim에서의 마지막 날... 남은 쿠폰으로 필름 3통과 아이스크림, 보드카를 샀다. 저녁엔 아이스크림과 보드카를 마시며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다음날 새벽 4시 난 셰루트를 타고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으로 떠났다. London으로 떠나기 전까지 터키에서의 여독을 충분히 풀고 떠날 수 있게 해준 Pip 아줌마가 더욱 고마웠다. 그래서일까? 일주일간의 London과 Oxford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1월 말 건강하게 한국에 도착했다. 

며칠 전 군대시절 펜팔 친구를 만났다. "오빠, 인상도 밝아지고 많이 활발해진 것 같아서 보기 좋아". 조금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난 이제 새로운 나로 태어난 것이었다. 떠나고 싶다면 떠나라. 그리고 무엇에 목적을 두고 떠나기보단 그냥 떠나라! 느끼고 얻는 게 많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 있을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대여 떠나라. 새로운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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